2016년 1월 11일 월요일

1세 단군 왕검


1세 단군 왕검  

고기에서 말한다.
‘왕 검의 아버지는 단웅이고 어머니는 웅씨의 왕녀이며 신묘(BC 2370)년 5월 2일 인시에 박달나무 밑에서 태어났다. 신인의 덕이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겁내어 복종했다. 14세 되던 갑진(BC 2357)년에 웅씨의 왕은 그가 신성하다함을 듣고 그로써 비왕으로 삼고 대읍의 다스림을 대행하도록 하였다. 무진(BC 2333)년 제요도당 때에 단국으로부터 아사달의 단목의 터에 이르르니 온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한이 모두 뭉쳐서 하나로 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가 멀리 미치게 되었다. 
이를 단군왕검이라 하니 비왕의 자리에 있기를 24년, 제위에 있기를 93년이었으며 130세까지 사셨다.’

무진 원년 바햐흐로 신시의 다스림이 시작되었을 때 사방에서 모여든 백성들이 산과 골짜기에 두루 퍼져 살며 풀잎으로 옷을 해입고 맨발로 다녔다. 개천 1565년 상월 3일에 이르러 신인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와서 단목의 터에 자리잡았다. 무리들과 더불어 삼신께 제사를 올렸는데 지극한 신의 덕과 성인의 어진 마음을 함께 갖추었더라. 마침내 능히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이어 그 다스림이 높고 크고 또 맹렬하였으니 구한의 백성들이 모두 마음으로 따르며 천제의 화신이라 하고 그를 임금으로 삼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신시의 옛규칙을 도로 찾고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여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이름했다.
  
이에 팽우에게 명하여 땅을 개척하도록 하였고, 
성조에게는 궁실을 짖게 하였으며, 
고시에게는 농사를 장려하도록 맞기셨고, 
신지에게 명하여 글자를 만들게 하였으며, 
기성에게는 의약을 베풀게 하고, 
나을에게는 호적을 관리하게 하였으며, 
희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하게 하고, 
우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비서갑의 하백녀를 거두어 아내로 삼고 누에치기를 다스리게 하니 순방의 다스림이 온 세상에 두루 미쳐 태평치세를 이루었다. 
정사 50년(BC 2284) 홍수가 크게 나서 백성들이 쉴 수가 없었다. 제께서는 풍백인 팽우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고 높은 산과 큰강을 평정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하였으니 우수주에 그 비석이 있다. 
무오 51년(BC 2283) 임금께서 운사인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짖고 제천의 단을 마리산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이 바로 그것이다.
갑 술 67년(BC 2267) 단군께서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도산에서 우사공과 만나게 하였다. 태자는 오행치수의 방법을 전하여 주었고 나라의 경계도 따져서 정했으니, 유주와 영주 두곳 땅이 우리에게 속하였다. 또 희대지방 제후들을 평정하여 분조를 두고 이를 다스렸는데, 우순에게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경 자 93년(BC 2241) 단군께서 버들궁전에 계셨는데 흙계단이 저절로 생겼고 풀숲은 없어지지 않으니 박달나무 무성한 그늘에서 곰 호랑이와 더불어 노닐며 소와 양이 크는 것을 보셨다. 도랑을 파고 밭길을 내고 누에를 치도록 권장하며 고기잡이를 가르치니 백성들은 남는 물건을 나라 살림에 보태었다. 나라 안에는 큰 모임이 있었이니 시월 상달이면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들 모두 기쁨에 넘쳐서 환호하며 스스로 즐겼다. 이로부터 단군님의 교화는 온누리를 가득 덮어서 멀리 탐랑에까지 미쳤으며 가르침은 점차로 널리 퍼져갔다.
이 에 천하의 따을 새로 갈라서 삼한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삼한은 모두 5가 64족을 포함하였다. 이 해 3월 15일 단군께선 봉정에서 붕어하시니 교외로 10리쯤 떨어진 땅에 장사지냈다. 이에 백성들은 마치 부모님이 돌아가신 듯 단군님의 기를 받들어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함께 앉아 경배하며 생각하여 마음속에서 잊지 못하더라. 이에 태자 부루가 새로 단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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