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5일 금요일

대가야




대가야

      - 남당유고


1대.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 (생몰년 ? ~ ?) 재위 A.D.158 ~ A.D.177
     대가야의 시조

파사이사금기 33년(A.D.158) 11월 가야세주 정견(正見)이 죽어 아들 주일(朱日)이 섰다. 스스로 아시금(阿豉今)이라 칭하였다.


2대. 아수왕(阿修王) (생몰년 ? ~ 219) 재위 A.D.177 ~ A.D.219

지마기 19년(A.D.177) 7월 가야군 아수(阿修)가 섰다
일성기 9년(A.D.200)  5월 금관 거등(居登)이 그 여동생 비가(毗可)를 가야 아수(阿修)에게 시집보냈다.
고구려사초 제12세 중천대제기 중, 12년(AD259) 이 때, 가락(駕洛)국의 거등(居登)이 죽었다.


3대. 비가여왕(毗可女王) (생몰년 ? ~ 231) 재위 A.D.219 ~ A.D.231

아달라기 7년(A.D.219) 7월 가야(加耶) 아수(阿修)가 죽어, 그의 처 비가(毗可)가 스스로 섰다.
                          서자(庶子) 우리(宇理)를 새로운 남편으로 삼았다.


4대. 미리신여왕(美理神女王) (생몰년 A.D.223 ~ 281) 재위 A.D.231 ~ 269

아달라기 19년(A.D.231)  2월 가야(加耶)의 (여)군(君) 비가(毗可)가 죽었다. 딸 미리신(美理神)이 섰다.
                            우리(宇理)를 남편으로 삼았다.
아달라기 11년(A.D.223)  4월 (가야의) 비가(毗可, 금관출신)가 우리(宇理)의 딸 미리(美理)를 낳았다.
벌휴기 25년(A.D.281)    7월 가야여군(加耶女君) 미리신(美理神)이 죽었다. 술명(述明)에게 가서 조문하도록 명하였다.


5대. 하도여왕(河道女王) (생몰년 237~ 282) 재위 A.D.269~ 282

내해기 13년(A.D.269) 9월 가야(加耶)가 입조하여 하도(河道)가 새로 왕이 되었음을 보고하였다.
                         미지(美知)에게 가서 효수(孝修)를 조문하도록 명하였다.
아달라기 25년(A.D.237) 2월 (가야) 미리신(美理神)이 하지(河智)의 딸 하도(河道)를 낳았다.
벌휴기 26년(A.D.282) 9월 가야(加耶)의 하도(河道)가 죽어 딸 하리(河理)가 왕이 되었다.


6대 하리여왕(河理女王)(생몰년 261 ~ ?) 재위 A.D.282 ~ 287

벌휴기 26년(A.D.282) 9월 가야(加耶)의 하도(河道)가 죽어 딸 하리(河理)가 왕이 되었다.
내해기 5년(A.D.261)  9월 (가야) 미리신(美理神)이 하도(河道)의 딸 하리(河理)를 낳았다.


7대 효도왕(孝道王)(생몰년 254 ~ 318) 재위 A.D.287 ~ 313

내해기 31년(A.D.287) 3월 가야(加耶) 여군(女君) 하리(河理)가 남편 효도(孝道)에서 선위하였다.
벌휴기 11년(A.D.254) 5월 미리신(美理神)이 효수(孝修)의 아들 효도(孝道)를 낳았다.
첨해기 9년(A.D.318)  9월 가야(加耶)의 노군 효도(孝道)가 죽었다.
                         차리(車理, 미지와 대리의 아들)에게 가서 조문하도록 명하였다.


8대 하리지여왕(河理智女王)(생몰년 ? ~ 341)

재위 A.D.313 ~ 341)

첨해기 4년(A.D.313) 정월
가야(加耶)의 왕 효도(孝道)가 그의 딸 하리지(河理智)에게 선양을 하고, 선위(宣威)를 맞이하여 사위로 삼았다.

미추기 17년(A.D.341)
10월 가야(加耶)의 여자 임금 하리지(何理智)가 죽었다, 딸 선실(宣失)이 이어 왕이 되었는데, 거듭 수극(守克)을 남편으로 삼았다



9대 선실여왕(宣失女王)(생몰년 327~ 389)

재위 A.D.341 ~ 352

미추기 17년(A.D.341)
10월 가야(加耶)의 여자 임금 하리지(何理智)가 죽었다, 딸 선실(宣失)이 이어 왕이 되었는데, 거듭 수극(守克)을 남편으로 삼았다

미추기 3년(A.D.327)
3월 가야(加耶)의 여자 임금 하리지(河理智)가 선위(宣威)의 딸 선실(宣失)을 낳았다. 차리(車理)에게 입공(入貢)을 하도록 명하고, 나아가 동정(動靜)을 여쭈도록 하였다. 자의(紫衣)를 내리도록 하였다.

내물기 13년(土牛:기축389)
정월, 경도(京都)에 크게 역병이 돌고 가야(加耶) 또한 크게 역병이 돌아 선실태후(宣失太后)가 역질로 붕(崩)했다. 제(帝)가 그를 위해 궁중에서 발상(發喪)하며 말했다.
“선실(宣失)은 곧 우리 사씨(思氏)의 어머니이니 또한 나의 어머니 아닌가.”
명을 내려 그에게 후한 부의를 보내도록 했다. 궁중에서 많이 그를 위하는 효(孝)로써 제(帝)에게 아첨하였다.



10대 수극왕(守克王)(생몰년 A.D.304 ~ 377)

재위 A.D.352 ~ 377

유례이사금 3년(A.D.352)
가야(加耶)의 선실(宣失)이 수극(守克)에게 선위를 하였다.

조분기 13년(A.D.304)
9월 수라(守羅)가 (가야) 효도(孝道)의 아들 수극(守克)을 낳았다.
아달라阿達羅(미시美時-미리신美理神의 여동생) - 미라美羅
하도河道(미라美羅) - 하라河羅
내해奈解(하라河羅) - 수라守羅

내물기 원년(A.D.377)
11월 가야(加耶)의 왕 수극(守克)이 죽어 모가(慕訶)가 섰다. 선실(宣失)이 태후가 되었다. 당시 가야는 왜가 상통하여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이 때에 이르러 선실의 말을 듣지 않고 왜왕녀를 처로 삼았다. 사신을 보내어 꾸지람을 하였다.



11대 모가왕(慕訶王)(생몰년 346 ~ 403)

재위 A.D.377 ~ 403

내물기 원년(A.D.377)
11월 가야(加耶)의 왕 수극(守克)이 죽어 모가(慕訶)가 섰다. 선실(宣失)이 태후가 되었다. 당시 가야와 왜가 상통하여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이 때에 이르러 선실의 말을 듣지 않고 왜왕녀를 처로 삼았다. 사신을 보내어 꾸지람을 하였다.


미추기 22년(A.D.346)
8월 가야(加耶)의 임금 선실(宣失)이 수극(守克)의 아들 모가(慕訶)를 낳았다.

실성기 2년(계묘403)
5월 가야군(加耶君) 모가(慕訶)가 졸(卒)하고 딸 후섬(厚蟾)이 섰다.



12대. 후섬여왕(厚蟾女王)(생몰년 ? ~ ?)

재위 A.D.403 ~ 414

실성기 2년(계묘403)
5월 가야군(加耶君) 모가(慕訶)가 졸(卒)하고 딸 후섬(厚蟾)이 섰다.

[후섬(厚蟾) 왜왕(倭王)의 딸 혹은 야왕(野王)의 딸과 모가(慕訶)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추측된다.]



13대 사가왕(舍訶王)(생몰년A.D.369~ 428)
재위 A.D.414 ~ 428

실성기 13년 (갑인414)
삼월 가야(加耶)의 여군(女君) 후섬(厚蟾)이 그 남편 사가(舍訶)를 왕(王)으로 삼았다.

기림기 6년(A.D.369)
2월 가야(加耶)의 안주인 선실(宣失)이 수극(守克)의 아들 사가(舍訶)를 낳았다.

눌지기 12년 (무진428)
9월, 가야(加耶)의 사가(舍訶)가 병몰(病沒)하자 장녀 섬신(蟾神)이 즉위하여 그 종형 삼광(三光)을 남편으로 삼았다.



14대 섬신여왕(蟾神女王)(생몰년 ? ~ 463)

재위 428 ~ 463

눌지기 12년 (무진428)
9월, 가야(加耶)의 사가(舍訶)가 병몰(病沒)하자 장녀 섬신(蟾神)이 즉위하여 그 종형 삼광(三光)을 남편으로 삼았다.

유례기 (A.D. 463)
가야의 여왕 섬신(蟾神)이 죽어 그의 딸 아리(阿利)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였다.



15대 아리여왕(阿利女王)(생몰년 431 ~ 491)

재위 A.D. 463 ~ 491

유례기 (A.D. 463)
가야의 여왕 섬신(蟾神)이 죽어 그의 딸 아리(阿利)로 하여금 왕위를 잇게 하였다.

눌지기 15년 (A.D. 431)
7월 섬신(蟾神)이 삼광(三光)의 딸 아리(阿利)를 낳았다.

소지기 (A.D. 491)
가야의 여왕 아리(阿利)가 병으로 죽었다. 성국(誠國)이 왕이 되었다. 청화(靑華)를 왕비를 삼길 청하여 허락하였다.



16대 성국왕(誠國王)(생몰년 442 ~ 506)

재위 491 ~ 506

소지기 (A.D. 491)
가야의 여왕 아리(阿利)가 병으로 죽었다. 성국(誠國)이 왕이 되었다. 청화(靑華)를 왕비를 삼길 청하여 허락하였다.

눌지기 26년(A.D.442)
2월 섬신(蟾神)이 도광(道光)의 아들 성국(誠國)을 낳았다.

지증기 7년(A.D. 506)
7월 성국(誠國)이 죽어 청렵(靑巤)이 왕이 되었다.



17대 청렵여왕(靑巤女王)(생몰년 A.D. 476 ~ ?)
재위 A.D. 506 ~ 524

지증기 7년(A.D. 506)
7월 성국(誠國)이 죽어 청렵(靑巤)이 왕이 되었다.

자비기 (A.D. 476)
청화(靑華)가 성명(讚明)의 딸 청렵(靑巤)을 낳았다. 가야가 사신을 보내 알려오고, 가야의 특산물을 바쳤지만 사양하였다.



18대 이뇌왕(異腦王)(A.D. 494 ~ ?)

재위 A.D. 524 ~ ?

법흥기 11년(A.D. 524)
왕이 청렵(靑巤)을 국경에서 만나 행차하였다. 청렵은 권처(權妻)로 삼아주기를 원하며, 죽을 때까지 왕을 섬기고자 하였다. 왕이 허락하고 가야(加耶)를 남북으로 나누었다. 청명(靑明)을 북국(北國), 이뇌(異腦)를 남국(南國)(왕)으로 삼았다.

소지기 (A.D. 494)
청렵(靑巤)이 성국(誠國)의 아들 이뇌異腦를 낳았다.



19대 도설지(道設智; 월광月光)(생몰년 A.D. 524 ~?)

재위 ? ~ 562

법흥기 11년(A.D. 524)
3월 양화(兩花)가 아들 월광(月光)을 낳았다. 옥진궁에서 사신을 보내어 신라의 특산물을 주었다.

비지比智(조리助里) - 호조好助 , 내숙乃宿(조생鳥生) - 선혜善兮
호조好助(선혜善兮) - 양화兩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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