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5일 금요일

제나라 5. 해운압신라발해양번등사


5. 해운압신라발해양번등사


당 역사상 최초로 설치된 이 관직은 당~신라~발해~왜를 오가는 모든 왕래를 총괄하는 것으로
낙양 동쪽에서 일어나는 사안에 관해 전권을 행사하는 자리였다.

무역은 ‘동양의 로마’ 당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당시 신라는 연1회 이상 당에 조공을 바치고 있었다.
신라 사신이 당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정기를 거쳐야 했다. 바다 교통의 요지 등주와,
육상 교통의 중심지 영주가 모두 그의 관할이었기 때문이다.

발해도 마찬가지였다. 766~779년까지 13년 간, 발해는 무려 143회에 걸쳐 당으로 공식사절을 파견했다.
이정기는 당~발해뿐 아니라 발해~왜를 오가는 모든 무역을 관장했다. 여기에 수반되는 음성적 상거래도 물론 그의 몫이었다.

이정기의 ‘시장’에서 조정은 방관자였다.
이곳에서는 발해의 말을 포함, 당이 발해로부터 수입을 금하고 있던 금·은·동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이정기가 장악하고 있던 산동은 예부터 농산물이 풍부한 옥토였다.
게다가 이곳에는 염전이 있었다. 소금은 당시 가장 값비싼 재화의 하나였다.
766~779년 사이에 당이 거둔 국고수입의 절반은 소금을 통해 얻은 염리였다.
이정기는 소금 판매와 회수의 조운, 국제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훗날 황제와의 싸움을 가능하게 해준 밑천이 된다.

당은 번진 세력의 발호와 이민족의 침입, 환관의 횡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당시 가장 강력한 번진은 위박 절도사인 전승사.
그는 자신의 아들을 황제의 딸과 결혼시킨 뒤, 황제의 명을 거역할 정도로 위세를 떨었다.
황제 대종은 전승사를 제거해야 했다. 이 때 그가 도움을 청한 사람이 바로 이정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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