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5일 금요일

제나라 4. 오랑캐 제압


4. 무술 뛰어나 일격에 오랑캐 제압


병사들은 무술이 뛰어나고 성격이 침착한 이정기를 따랐다. 그런 이정기를 시기한 것은 뜻밖에도 절도사 후희일이었다.
후희일은 고종사촌 이정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기 자리를 뺏길까봐 불안해하던 후희일은 이정기에게 주었던 병마사직을 박탈한 뒤 엉뚱하게도 불탑 건립에 몰두했다.
그러자 공사에 동원된 병사들로부터 불평이 터져나왔다. 반감은 반란으로 이어졌다.

후희일은 불교뿐 아니라 미신에도 빠져 있었다. 가는 곳 마다 점쟁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날도 그는 무당과 함께 성 밖으로 나갔었다. 군사들은 그 틈을 노렸다.
후희일이 성을 비우자 성문을 닫아 걸고 열어주지 않은 것이다.

“성문을 열어라.”
“…….”
성 안에서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문을 열라고 하지 않느냐?”
“열어드릴 수 없소.”

차가운 목소리가 반응했다. 후희일은 그제서야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후희일은 분노했다. 그를 수행했던 부대는 많지 않았지만 노한 후희일은 앞뒤를 가리지 못했다.
“성을 공격하라.” 후희일이 명령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후희일은 병사들의 반격에 쫓겨 도망가고 말았다.

이 반란을 이정기가 사주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조정은 이정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 대한 장악력을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평로치청절도관찰사·해운압신라발해양번등사·검교공부상서·겸어사대부·청주자사를 제수하면서
‘이정기’란 새 이름을 내렸다. 이 때가 765년, 이정기의 나이 33세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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