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17일 일요일

가섭원 부여 1. 시조 해부루


 
가섭원 부여기 ( 동부여 )
휴애거사 범장 지음

             - 한단고기
 
시조 해부루 재위 39년

을미 원년 왕은 북부여 때문에 제약을 받아 가섭원 혹은 분능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옮겨서 살았다. 오곡이 다 잘 되었는데 특히 보리

가 많았고 또 범 표범 곰 이리 따위가 많아서 사냥하기 편했다.
정 유년 국상 아란불에게 명하여 널리 베풀어 주변의 유민들을 불러 모으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잘 먹여주고 따뜻하게 살 곳을 주

며 또 밭을 주어 경작하게 하니 몇해 안되어 나라는 풍부해지고 백성들은 풍족해 졌다. 때에 필요할 때마다 비가 내려 분능을 기름지

게 하는지라, 백성들이 왕에게 정춘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임 인 8년 앞서 하백녀 유화부인이 나들이를 나갔는 데 부여의 황손 고모수가 유혹하더니, 강제로 압록강변의 어떤 집에서 자기 멋대

로 하여 버리고는 고모수는 승천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유화의 부모는 유화가 무모하게 고모수를 따라갔음을 책망하여 마침내 구석 방

에 딸을 가두어 버렸다. 고모수는 본명이 불리지 이며 혹은 고진의 손자로고도 한다. 왕께서는 유화를 이상히 여겨 수레를 같이 타고

궁으로 돌아와 깊숙한 곳에 가두어 버렸다. 그해 5월 5일 유화부인은 큰 알 하나를 낳으니 한 사내 아이가 그 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

름을 고주몽이라 불렀는데 생김새가 뛰어났으며 나이 7세에 저 혼자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에선 활 잘 쏘

는 것을 일컬어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이로써 이름으로 불렀다.
갑 진 10년 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어느날 산천에 제사지내고 아들 있기를 빌었더니 타고 있던 말이 곤연에 이르르자 큰 돌을 마주

보고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겨 사람을 이켜 그 큰 돌을 굴리게 하였더니 어린애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

더라. 왕은 봅시 기뻐하며 ‘이 아이야 말로 하늘이 나에게 내리신 아기로다’라고 하시며 곧 거두어 기르니, 이름을 금와라고 하고

그가 장성하매 태자로 책봉하였다.
임 술 28년 나라 백성들이 고주몽을 가리켜 나라에 이로움이 없는 인물이라 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다. 고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의 명

을 받들어 동남쪽으로 도망하여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천에 이르러, 이듬해 새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고구려의 시조가 된다.
계유 39년 왕이 죽고 태자 금와가 즉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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